선교장
조선시대 전형적인 상류층 저택으로
99칸방의 영동지역 대표적인 옛 건출물로,
특히 버선과 한복선을 닮은
지붕의 선이 백자의 선만큼 아름답다.
조선후기 주택생활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살림집이다.
전주사람인 이내번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집으로,
‘선교장(船橋莊)’이라는 이름도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케 한다고 하여 붙였다고 한다.
안채·사랑채·행랑채·별당·정자 등 민가로서는 거의 모자람이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1700년 이전에 건립된 안채는 이내번이 지었으며,
선교장의 건물들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안채의 오른쪽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주인전용의 별당건물인 동별당은
이근우가 1920년에 지은 ㄱ자형 건물이다.
열화당은 사랑채로서 순조 15년(1815)에 이후(李厚)가 세웠으며,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선교장의 "활래정"
선교장의 사랑채인 "열화당"
격이 조금 낮은 손님들이 머물다 가는 곳이다.